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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케팅이라 믿었던 것들의 진실 – "마케팅한다는 착각"

📑 목차

    지난달 회사에서 신제품 출시 회의를 했습니다. 기획팀은 "SNS 바이럴 마케팅 하면 됩니다", 영업팀은 "일단 할인부터 돌리고 봐야죠"라고 말했습니다.

     

    회의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정작 "우리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엔 아무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마케팅 '활동'만 나열하고 있었던 거죠. 바로 그때 떠오른 책이 세리자와 렌의 "마케팅한다는 착각"입니다.

     

    제목부터 도발적이지만, 읽고 나니 우리가 마케팅이라고 부르던 대부분이 실은 그냥 '홍보 활동'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케팅한다는 착각을 상징하는 혼란스러운 마케팅 아이콘
    마케팅한다는 착각을 상징하는 혼란스러운 마케팅 아이콘

    마케팅은 광고가 아니다 – 본질과 수단의 혼동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솔직히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마케팅한다는 착각"이라니, 대체 뭘 착각한다는 걸까? 저는 마케팅 관련 업무를 3년 넘게 해왔는데, 혹시 제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보니, 그 불안감이 정확했더군요. 저는 마케팅을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던 겁니다.

     

    저자 세리자와 렌은 첫 장부터 핵심을 찌릅니다. 마케팅은 광고나 프로모션이 아니라,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모든 과정이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은 이걸 거꾸로 생각합니다. 제품을 만들고, 가격을 정하고, 유통을 깔고, 그다음에 "자, 이제 마케팅 좀 해볼까?"라고 말하죠. 

     

    이게 바로 '착각'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책에서 든 사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일본 중소기업이 고급 주방용품을 만들었는데 안 팔렸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늘리고, 할인 행사를 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까지 했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습니다. 문제가 뭐였을까요? 

     

    제품 자체가 시장의 니즈와 맞지 않았던 겁니다. 타겟 고객은 '실용성'을 원했는데, 제품은 '디자인'에만 집중했거든요. 아무리 광고를 때려도 소용없는 거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관여했던 프로젝트가 떠올랐습니다. 

     

    한 화장품 브랜드가 "젊은 여성을 위한 저가 라인"을 출시했는데, 정작 패키지는 중년층 취향이었고, 판매처는 백화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안 팔렸죠. 그런데 회사는 "마케팅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광고비만 더 쏟아부었습니다. 

     

    마케팅은 제품을 만들기 전부터 시작되는 건데, 우리는 제품이 나온 후에야 마케팅을 시작했던 겁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건 마케팅이 아니라 사후 수습이었던 셈이죠.

    고객을 '설득'하려 하지 마라 – 선택받는 브랜드의 조건

    두 번째로 강하게 다가온 개념은 '설득 마케팅의 종말'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광고를 보고 마음이 바뀐 적이 있나요?" 솔직히 저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설득하려는 광고는 신뢰가 안 가더군요. 그런데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소비자를 '설득'하려고만 합니다. 

     

    "우리 제품이 좋다", "지금 사면 할인이다", "다른 제품보다 우수하다". 이런 메시지들로 가득하죠.

     

    세리자와 렌은 이게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소비자는 설득당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거죠. 대신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설득이 아니라 '발견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우리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거죠.

     

    재미있는 비유가 있었습니다. 

     

    연애에 비유하면, 예전 마케팅은 "나랑 사귀면 이런저런 장점이 있어"라고 어필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다가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억지로 호감을 얻으려 하면 오히려 부담스럽죠. 하지만 자연스럽게 여러 번 마주치다 보면 친근함이 생깁니다.

     

    실제 사례로 떠오른 게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동네 서점은 광고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주 독서 모임을 열고,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만들고, 책 추천 이벤트를 합니다. 

     

    직접 책을 사라고 말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머물다 보면 책을 사게 됩니다. 누군가 "이 책 사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저자가 말하는 '발견의 마케팅'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요.

    데이터는 답이 아니라 '힌트'다 – 숫자에 가려진 본질

    세 번째 챕터에서 다루는 건 '데이터 맹신'입니다. 요즘은 모든 게 데이터로 측정됩니다. 클릭률, 전환율, 체류 시간, 이탈률. 숫자로 증명되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죠. 

     

    저자도 데이터의 중요성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다만, 데이터를 '답'으로 착각하는 순간 마케팅이 망가진다고 경고합니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를 보면, 한 온라인 쇼핑몰이 A/B 테스트를 열심히 했습니다. 버튼 색깔을 바꾸고, 문구를 조정하고, 레이아웃을 수정했죠. 분명히 클릭률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매출은?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클릭은 늘었지만, 실제로 구매할 만한 이유는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일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비유합니다. 병원에서 체온계가 38도를 가리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죠. 그건 단지 '열이 난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열이 나는 '원인'을 찾는 겁니다.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률이 높다는 데이터는 증상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왜 사람들이 떠나는가?"입니다.

     

    개인적으로 공감했던 부분은, 제가 예전에 블로그 운영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조회 수만 보고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자극적인 제목만 달게 됐고, 내용은 점점 얕아졌습니다. 숫자는 늘었지만, 정작 댓글이나 공감 반응은 줄었죠.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숫자가 높다고 해서 진짜 의미 있는 소통이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걸요. 

     

    저자가 말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데이터는 참고 자료일 뿐, 판단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거죠.

    브랜드는 '만드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 장기 관점의 마케팅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건 '장기적 관점'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단기 성과에만 집착합니다. 이번 달 매출, 이번 분기 목표.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보다 보면, 정작 브랜드가 쌓이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수많은 경험이 누적돼서 형성된다는 거죠.

     

    세리자와 렌은 브랜딩을 '신뢰 통장'에 비유합니다. 좋은 경험을 줄 때마다 통장에 돈이 쌓이고, 실망을 줄 때마다 돈이 빠져나갑니다. 

     

    광고 한 번으로 큰돈을 넣을 순 없지만, 작은 좋은 경험들이 쌓이면 결국 큰 자산이 됩니다. 

     

    반대로, 단기 매출을 위해 과장 광고를 하거나 품질을 낮추면, 통장은 순식간에 바닥납니다.

     

    책에서 든 예시 중 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의 한 작은 카페는 20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팝니다. 

     

    유행하는 디저트도 안 만들고, SNS도 안 합니다. 그런데 손님은 끊이지 않습니다. 왜? 20년 동안 한결같은 맛과 분위기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한결같음'을 믿고 찾아옵니다. 이게 바로 브랜드의 힘이라는 거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10년째 쓰는 가방 브랜드가 있는데, 사실 디자인이 특별히 세련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AS를 거부한 적이 없고, 제품 수명이 길고, 고객 응대가 항상 친절합니다. 

     

    그래서 저는 새 가방이 필요하면 다른 브랜드는 아예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쌓인 신뢰의 결과입니다. 

     

    화려한 광고나 할인 이벤트가 만든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일관된 경험이 만든 거죠. 

     

    저자가 말하는 '장기 브랜딩'의 본질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아쉬운 점 – 실행 가이드의 부재와 사례 편중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가장 크게 느낀 건, 개념 설명은 탁월하지만 구체적 실행 방법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설득하지 말고 발견되게 하라"는 말은 명확한데, 그럼 실제로 어떤 콘텐츠를, 어떤 채널에,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디테일이 적습니다. 

     

    철학은 이해했는데, 내일 당장 뭘 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연한 느낌이랄까요.

     

    또한, 사례가 대부분 일본 시장 중심이라는 점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문화적 맥락이 다른 한국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트렌드 변화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거든요. 그래서 '장기 관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마케팅을 다시 정의하는 시간

     

    "마케팅한다는 착각" 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마케팅이라고 착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체합니다.

     

    광고가 아니라 가치 전달, 설득이 아니라 발견, 데이터가 아니라 통찰, 단기가 아니라 장기. 이 네 가지만 제대로 이해해도, 마케팅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뀔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책에서 제시한 개념들을 실제 디지털 마케팅 환경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